-
1.
"누구라도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내 인격도 타인의 몇몇 인격을 모방해서 합성한 것이다.
그것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나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정말로 작은 조각 같은 단편적인 것이,
단지 맥락도 없이 흩어져 있을 따름이다.
이것도 또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있을 테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 자신'같은 듣기 좋은 말을 들었을 때
반사적으로 혐오감을 느낀다.
왜 그러냐하면, 원래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참으로 별 볼 일 없고, 대단치 않고,
아무 특별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미 지나간 인생 속에서 진절머리 날 만큼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무런 특별한 가치가 없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과
지속적으로 씨름하며 살아가야 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이라는
아름다운 말을 노래하는 노래는 됐고,
'시시한 자신과 어떻게든 맞붙어 타협해야 하지, 그것이 인생이야'하는
노래가 있다면, 꼭 듣고 싶다. "
...
"무언가 되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아무리 가능성이 아주아주 적다고 해도,
처음부터 무언가 되고자 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무언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무언가 되려고 할 때에는 아직 결정되지 않는다.
무언가 되려고 하기 전에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 도리는 없다.
그것은 도박이다.
도박에 이겼을 때 손에 넣는 것은
'무언가 될 수 있었던 인생'이다.
그리고 졌을 때 내밀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될 수 없었던 인생' 자체다."
...
"되풀이하지만, 여기에서 나는
누구나 자기실현의 가능성이 있다든가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적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 인생은 몇 번이나 기술한 것처럼,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단지 시간만 흘러가는 듯한,
그런 인생이다.
우리 대다수는
배신당한 인생을 살고 있다.
우리 자신이라는 것은 태반이
'이럴 리 없었던' 자신이다.
곰곰이 생각하면, 무난한 인생, 안정된 인생이
제일 좋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까 그런 길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다.
그러나 졌을 때는
자기 자신을 다 내주어야 하는 내기를 거는 사람도
숱하게 많다.
그것은 그것대로, 하나의 선택이다.
어느 쪽이 좋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는
자신의 의사나 의도를 뛰어넘어
때로 그런 내기를 할 때가 있다. "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중)
2.
소수자들의 삶을 연구하는 일본인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의 에세이를 읽다가
마음이 가 닿는 대목들이 있어서 옮겨 보았다.
3.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겨울을 맞았었다.
한 고비 넘긴 승리가 기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광장에 휘날린 N개의 깃발,
느슨하고 구멍이 숭숭 뚫린 연대가 신선했었다.
50이 넘은 친구들이 부지런히 집회에 참여하고 열을 내는 모습들을 보는 것이 흐뭇했지만, 동시에 우리의 자리는 이제 무대가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수행하든, 해야 할 숙제는 남아있다.
낡은 체제를 뒤집어 엎는 일.
성장주의 신화, 단일대오의 폭력성...
그런 것들을 전복하는 혁명.
다양하고 소수인 목소리들이 제 자리를 찾는 것.
그 소수를 껴안기 위해 익숙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불편해할 수 있는 다수의 반성.
4.
내적인 과정을 수반하지 않은 혁명은 혁명이 아니다.
나는 배우고 싶고, 자라고 싶다.
내 피부 아래에서 숨쉬는 것이 편안한, 그런 자유를 느끼고 싶다.
5.
거리를 걷다보니, 몸이 가뿐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운동이 필요한데 게으름때문에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적인 혁명은 쉽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