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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방학
    일상다반사 2011. 3. 27. 13:00
    1.
    있었는지 없었는지 무감각했던 한주일의 봄방학이 끝나간다.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지금까지 모든 방학에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뭐해야한다 계획 세워놓고는
    그 3분의 1도 안 했다.(못했다고 해야하나...)
    그럴 걸 부담스럽게 왜 계획은 생각해서 스스로를 볶는지 모르겠다.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는 그냥 사는대로 살도록 해야겠다.
    (노력해야겠다...고 쓸 뻔 하다가... 뭘 또 노력해 하는 생각에 화급히 단어를 바꿨다)

    2.
    DC에서 열리는 토론대회에 가는 아이와 아이 친구를 데려다주느라
    아침 포토맥 강을 따라 달렸다.
    몰랐는데, 그 유명한 벚꽃축제가 벌써 시작됐다.
    워싱턴 이발소용 사진에 맨날 나오는 제퍼슨 메모리얼 인근의 벚꽃도
    아직 만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소담스레 피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나무들이 제법 물이 올랐다.
    우리집에 선 나무, 동네 길 가에 선 나무 다 이제 봄기운이다.
    이러다 오늘밤부터 눈이 온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오던 봄이 다시 가겠나...

    내 평생 이렇게 평화롭고 나무 많은 동네 살기는 처음이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로서는 숲속같은 동네를 차를 몰고 돌아오면서,
    그 아름한 봄기운 아래
    문득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지근한 통증이 느껴질만큼...
    한번도 가져본 적 없는 느낌인 것 같다.
    들어가기는 했었지만...
    어제는 페이스북 친구가 걸어놓은 심청이 인당수가는 장면의 판소리 한 대목을
    자정넘어 듣는데, 콧날이 시큰했다.
    실향민 같았다.

    3.
    피하려고 해도, 내가 살아온 행적과 마주친다.
    나는 제가 먹던 우물에 침 뱉는 인간은 이유가 무엇이 됐든
    마땅찮아 하는데,
    내가 그런 꼴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내놓고 침은 안 뱉더라도, 그 우물쪽으로 고개도 안 돌리고 싶은지는
    한참 됐다.
    좋거나 싫거나 17년 6개월을 다녔고, 인생의 3분의 1의 시간을 보낸 곳인데,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고 기분 더러운 일이다.
    친구의 말을 듣고 그 지면에 실린 칼럼 하나를 읽고는
    길길이 뛰었다.
    균형감각은 커녕, 최소한의 양식도 없는 이런 걸 기명칼럼이라고 싣는 조직이
    도대체 제정신이 있는 건지, 어떻게 공공기관이라며 이렇게까지 파렴치한 짓을 해도
    아무도 부끄럽지 않은지,
    그 집단 무감각증인 것 같은 상태, 내부자의 순치라는 게 무언지 알면서도,
     치가 떨렸다.
    지금 내가 그곳에 있지 않다는 안도감보다는 내가 그곳에 어떻게 그렇게 오래도록 있었던가
    내 자신이 섬뜩했다.
    나 자신도 그때는 똑같이 순치돼 있었겠지... 조금만 떨어져서 보아도, 이렇게
    끔찍한데...

    그곳에 내가 인간으로서 좋아하는 선배와 후배 동료가 있고, 특히나
    내 손으로 뽑은 후배들한테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책임감을 지금도 느낀다.
    그래서 지금껏 소통을 안 하고 입을 꾹 다물고 살지언정,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로는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나로 살려면, 피하든 부딪치든, 그렇게 마음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가게 된다면...

    슬프다.

    4.
    말을 아껴야겠다고 생각했다.
    입을 다물고 있다가, 그냥 자연스레 사람처럼 말을 하자 하고 입을 연 뒤,
    쓸데없이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다.

    자연스런 분노는 자연스레 터져나오도록 두자고 나를 편안하게 대하려 했지만,
    남이 내게 퍼붓는 폭력적인 언어들이 죽도록 싫은만큼,
    나도 무슨 이유에서든, 내가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공공선이 이유가 됐든, 사적인 감정이 됐든,
    험한 소리 하고 사는 건 되도록 안해야 할 것 같다.
    결국 모든 분노는 밖에 있는 무엇이 나를 건드려서가 아니라,
    내가 밖을 향해 내뿜는 것이고,
    결국 자신의 화를 삭이지 못하는 자기발산인 거니까....

    그렇다해서, 화나는 일에 화를 안 낼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해놓고 남도 다치고 나도 다치는 그런 폭언들은
    아무리 하는 그 순간 쾌감을 느낀다 하더라도 하지 말려 애써야겠다.
    (이건 자연스럽게가 안 되면 애써야 한다.)

    주먹으로 때리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험한 말이 가슴에 남기는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는
    내가 잘 알지 않는가.
    그걸 재생반복하지는 않고 싶다.

    5.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게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모이리라 하시도다
                                                               (시편 91장)

    ...어둠 가운데서도 나를 덮어줄 자비로운 깃을 생각한다.

    6.
    가파른 한주였다.
    그러나 내려가 볼만한, 아니 내려갔어야했던 바닥이었다.
    그럼에도 웃으며 살아간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다.
    웃음과 눈물은 마치 양날개처럼 같이 짝을 이루는 것이라,
    어느 하나가 없어졌다고해서 다른 하나가 더해지는 것도,
    어느 하나가 무거워졌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인간에게는 축복이 아니겠는가.
    울다가도 웃을 수 있는 거....

     바쁜, 바쁠 수밖에 없는 한 주가 기다리고 있다.

    7.
    요 며칠간 무한반복해서 들었던 노트르담 드 파리의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
    http://www.youtube.com/watch?v=M2OnxTL0VSg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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