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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 일 없는 한 주
    일상다반사 2011. 3. 20. 12:59
    1.
    목요일까지 통계시험 보느라 오랜만에 뇌를 공부용도로 좀 썼다.
    그러고 오늘은 SPSS 데이터 6시간 동안 입력한 걸, 마지막 순간에 다 날렸다아~
    (너무 기가 차니까 화도 안 난다.)
    원래 토요일은 공부와 관련된 어떤 일도 하지 않기로 한 날인데...밤 9시반까지 학교에서 꼼짝 못하고 앉아있었다.
    (사실 다른 날이라고 크게 다를 것도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정해놓고 안 하면 뭔가 의미심장하다.)
    4월1일 AEJ 논문 마감 때까지는 주말이 없을 것 같다.
    그런다고 paper가 다 통과될 지도 알 수 없지만...
    에잇, 4월말 애들 봄방학 때 코가 비뚤어지게 놀아야지.

    2.
    별로 한 것 없는 한 주에 그래도 특별한 일이라면, 기식이가 주동을 떠서 하는
    '시민정치행동'이라나 뭐라나 하는 단체의 발기인이 되겠다고
    한장짜리 서류도 보내고, 기금도 보내고 한 일이다.
    나는 도대체 그 '발기'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든다. 일단 내 성 정체성과 안 맞지 않는가 말이다. 좀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꿔치기 했으면 좋겠는데... 나도 마땅히 생각이 안 난다.

    발기는 둘째치고 사실 난 '정치'자 들어가는 일이 다 싫다.
    그런데도 한 건... 하나는 친구 때문이고, 하나는 조지 오웰 선생의 말 때문이다.
    조지 오웰 선생 말씀부터 먼저 줏어섬기자면,
    "나는 작가가 예민하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와 관련된 지저분한 일을 기피할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른 어느 누구와도 마찬가지로, 그는 찬바람 새는 회관에서 연설을 하고, 길바닥에 분필로 글을 쓰고, 투표를 호소하고, 전단을 나눠주고 심지어 필요하다 싶으면 내전에 참가할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한다.
    단, 자기 당에 대한 봉사로 다른 건 무엇이든 해도 좋지만 당을 위해 글을 쓰는 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원한다면 당의 공식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거부하면서도 당에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이단에 다다를지라도 그런 사고의 과정에 등을 돌려서는 안 되며,
    자신의 비정통성이 남들에게 감지되더라도 너무 개의치 말아야 한다."
    (조지 오웰 에세이 '작가와 리바이어던' "나는 왜 쓰는가 중")

    작가라는 말에는 전혀 방점을 두지 않는다. 나와는 현재로서는 관계없는 말이니까...
    그러나 정치가 지저분한 것이 맞으며, 그렇다고 해서, 개입하는 것을 기피할 수도 없다는 말에는 공감한다.
    언제나 누군가가 자기 몸 다 버려가면서 거름 져다 키우고 일궈놓은 과실만 냉큼 따먹을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런 좀 거창하거나 규범적인 생각 보다는,
    열아홉살 때부터 보아온 기식이와 늙어서라도 함께
    그 친구 가는 길을 조금이라도 동행해 줄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더 컸다.
    물론 친구따라 강남가는 건 아니다.
    내 생각없이 옆에 가기도 싫었던 '정치'자 들어가는 단체에
    선뜻 발을 들이밀지는 않았을테니까..

    나는 내 친구 기식이, 사회운동가로서의 그를 믿는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정치권력 획득'이라는 욕망에 수렴되는 거대한 블랙홀 앞에서 그 친구가 강건하게 버텨내는 것은, 지금까지 그가 해왔던 어떤 사회적 실험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맨홀에 빠진 친구가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르자 자기도 같이 맨홀에 뛰어 들었다는 어떤 친구.
    "이 친구야, 나를 꺼내줘야지 자네가 들어오면 어떻게 해"하고 먼저 빠졌던 친구가 한탄을 하자, 맨홀로 뛰어든 친구가 그랬다지. "응 나도 전에 한번 빠져 본 적이 있어서 나가는 길을 알아, 이 친구야."

    내가 즐겨보던 '웨스트 윙'의 대사 한 대목이다.

    나는 맨홀에 빠져본 적도 없고, 설령 친구가 빠졌다 한들 꺼내줄 힘도 없지만,
    그 친구와 함께 어둠속에서 길을 찾아보는 건 어쩌면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3.
    진실의 얼굴을 보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모든 것을 걸 용기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죽기 전에 진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오직 그렇게하겠다고
    자기를 던지는 사람에게만 주어질 것이다.
    비록 처참한 진실을 견뎌내야 할지라도...

    4.
    자정 6분 전.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 블로그에 의무적으로 글을 쓰자고 한
    나와의 약속을 이번주도 마감 전에 지켰다.

    얼른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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