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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고픈 예술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
아니 배부른 예술가도 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지.
그건 신이 건드려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았거든.
기껏해야 동네 피아노학원, 미술학원에서 재능잔치 정도 벌이는 아이들도 다 어미새 소리 흉내내는 새끼참새처럼,
피아니스트가 될래요, 발레리나가 될래요, 화가가 될래요,
그렇게 얘기하던 꼬마 때도 나는
"절대로 나는 그런 사람이 될 리가 없어"라고 생각했어.
딱 금을 그어놓고 거기까지만,
그러니까 예술가가 될 수 있을만큼의 신명은 타고나지 못했지만 그냥 좋아하는 사람으로만 있기로 했던 거지.그건 아주 아름답지만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았거든.
나는 아름다운 건 아는데 만들 수는 없는 사람일 거라고, 그러니까 누에가 실을 잣는 것처럼 그렇게 예술이 내 안에서 자연스레 생겨날 리는 없다는 걸 알았어.
신이 나를 그런 식으로 건드려놓지는 않았던 거야.
동네 아주머니들 모아놓고, 새로 배운 피아노곡을 쳐 보라고 엄마가 성화를 댈 때마다, 나는 꼭 약 팔러 나온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어.
그때가 제일 싫었지.
더 이상 피아노를 쳐 보라고 거실로 끌려나오지 않는 나이가 됐을 때, 비로소 피아노 치는 일이 좋아졌지만, 어쨌거나 나는 예술가가 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레슨을 그만두는데 별 미련은 없었어.
초등학교 5학년 때, 내 실력으로는 가당치 않은 일이 분명했지만, 레슨해 주던 선생님이 "예원학교를 보내자"고 했다가 엄마한테 "우리는 그럴 여력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전공자'가 되는 일을 접은 것을, 흔한 예술가 소설같은 데 나오는 '환경 때문에 재능을 꺾은 어린 영혼의 시련' 처럼 혼자서 장난감 훈장처럼 만지작거렸지. 예원학교 같은 데 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으면서 말야.
하지만, 하느님이 내게 한가지 준 게 있었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뱃속에서는 노래가 굴러 다녔던 거야.
좋을 때도, 나쁠 때도,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아무렇지 않을 때도,
내 안에는 늘 음들이 굴러다녔어.
입으로 소리 내어 듣지 않아도 내 머리 속에서 노래가 들렸지.
아니 그게 더 나았어.
입으로 소리 낸 것들은 머리 속 소리처럼 고음으로 올라가지도, 부드럽게 꺾이지 않을 때도 많았으니까...
어쨌든 길을 걸어다니면 지금은 사라진 레코드가게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부터 버스기사가 켜 놓은 라디오의 음악까지 내 마음에 감기는 음악들에는 다 공명을 일으켰지.
그건 바흐일 때도 있었고, 나애심일 때도 있었어.
비치보이스였다가 '미제레레' 어쩌구하는 수도사들이었다가, '쑥대머리 귀신형용'하는 판소리 한 대목으로 넘어가기도 했어.
얼마 전에는 택시를 탔는데, 아저씨가 켜놓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속으로 따라 부르면서, 그 노래를 내게 가르쳐준 외할머니 생각이 얼마나 나던지... 할머니는 지금으로 치면 랩에 해당하는 부분 "여보" 어쩌고 하는 대목을 손수건으로 눈물까지 찍어가면서 잘도 하셨지.
"(쿵) 당시이인은/철사줄로 두손 꽁꽁 묶인 채에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맨발로 절며 절며 ..."예술가가 될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내 안에는 노래가 굴러 다녔다고...
2.
지난 여름 비가 몹시 쏟아지던 날,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서 초대받은 행사장으로 가던 버스 안에서 녹초가 되어 버렸던 날이었지.
내가 어쩌자구 그냥 정중히 거절하였어야 할 일에, 주제 모르고 끼어들어 거들겠다고 한 것인지, 꽉 막혀 30분째 남산터널 안에 서 있는 버스 속에서 후회에 후회를 거듭했지.
우산을 써 봐야 소용없이 퍼붓는 비를 뚫고 겨우 내 순서에 맞추어 행사장에 도착해서는 했던 첫 마디가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아파서 곧 가봐야겠어요" 였는데, 일어서려고 주춤주춤 눈치를 보던 중에 초청가수의 노래가 시작됐어.
정윤경이라고 내가 늘 남자인가 여자인가 헷갈려하던, 하지만 남자가 분명한 노래운동하는 분이었어. 실제 대면하기는 처음이었지.
그날 쏟아지는 비 때문에 늦어진 행사에, 그나마 남들은 장광설로 늘어진 축사와 토론이 끝나기를 기다려 마침내 소박하게 차려진 음식이라도 한 접시씩 가져다가 소주랑 맥주랑 먹는 어수선한 분위기에 축가를 부르게 된 이 양반. 배도 고프고 지쳤다고 했어. 그래서 몇 곡만 부르겠다고...
생각해봐.
내 나이 또래는 되었을텐데,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무리 그 바닥에서는 알아주는 작곡가요 가수라지만, 기타 하나 들고 앰프도 직접 조작해가면서, 쩝쩝거리며 밥 먹고 애기하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거...엿같았을 거야.
내 마음도 그랬어. 듣는 게 미안하다, 제발 한 두 곡만 불러라.그랬는데...
한곡,두곡, 부르면서, 그놈의 '흥'이 붙기 시작했어. 나도 느꼈지. 레코드가게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때문에 가던 걸음을 멈추고 얼어버린 것처럼 붙박혀 있던, 그럴 때와 같다는 걸...
그이가 길거리에서 장기노숙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노래 '내가 왜'를 그이 목소리로 처음 들었지.
'꽃다지' 여가수의 노래로 들었을 때보다 더 좋았어.
유투브를 찾아보는데, 그이가 직접 부른 게 없네. 안타깝다. 이거라도...
http://www.youtube.com/watch?v=AH6Maf8SyTc
이거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기타를 긁어대며 "내가 왜 세상에 내버려진 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하고 노래부르던 그가, 배고프고 지쳐서 뚜껑이 열렸다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둥둥 떠다니는 음들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어. 그래서 계속 노래를 불렀지. 불러야할 노래 말고 그 순간에 자기가 부르고 싶던 노래들 말야.
한대수의 '바람과 나' http://www.youtube.com/watch?v=BdX87JAS934
마지막엔 이젠 광고배경음악으로까지 닳고 닳은 '행복의 나라로' http://www.youtube.com/watch?v=7AgBcabdplM 까지...
"인생은 나/ 인생은 나"라는 '바람과 나'의 마지막 대목을 읊조려 따라 부르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어. 그날 그 자리에 가기까지 지쳤던 몸과 마음을 내가 스스로 쓰다듬어 주듯이 말이야.
뭐가 어찌됐든,
내가 얼마나 슬프든, 힘겹든, 무력하든, 수치스럽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게 아닌 척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든...
"인생은 나... 인생은 나..."
3.
오늘 낮에 세 청년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어.
슈스케라고 앞의 슈퍼스타까지는 풀어보겠는데, 뒤의 케는 뭔지도 모르겠는, 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말이야.
자막 넣고, 출연자들 사연 드라마화하고, 하여튼 노래경연이라기보다는 예능 프로그램에 가까운데다, 하늘로 올라가는 하나 뿐인 동앗줄을 잡으려고 애를 태우는 사람들 보기 딱해서, 내 스스로 시간 지켜 그 프로그램을 보지는 않는데, 페이스북에 후배가 올려놓은 클립 하나를 본 거야.
썩은 동앗줄이라도 말야,
그걸 잡으려고 제 안의 소리를 자아내는 사람들은,
정말 혼신을 다 하는 사람들은,
걔 과거가 일진이었든, 지금도 건달이든,
노래하는 순간만큼은 그런게 다 지워져서 안 보이고,
노래만 남는다고...
그 순간만큼은 말야.
오늘이 그런 날이었어.
난 혼자 부를 때보다 '콜라보레이션'이라나(한국 예능 참 유식한 말 많이 쓴다), 중창을 할 때, 특히 남성 중창일 때, 그렇게 듣기가 좋더라.
서로의 다른 음색을 마치 벽돌 쌓듯이 잘 쌓아올린 기가 막히게 영리한 화음에, 원곡을 불렀던 게 잠자리 안경테 쓰고 나팔바지 입고 나왔던 '이치현과 벗님들'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박자의 변주, 무엇보다도 이런 화음을 만들어내는게 너무 행복하고 멋져서 서로 어쩔 줄 몰라 바라보며 노래하는 20대 청년들 셋이라니...
아, 그건 김필 곽진언 임도혁이라는 세 청년이 슈스케 6에서 부른 '당신만이' 였어.
심사위원들이 노래 여운도 가시기 전에 괴성을 질러대는 걸 자른 버전이 유투브에는 없어서, 그건 안 올릴래. 어쨌든 심사위원들 말이 나오는 대목에 거슬려하면서도 오늘 무한반복 청취.
어떤 느낌 이었냐고?
소름이 돋았어.
4.
그 셋 중의 한 청년 곽진언의 '후회'라는 자작곡이야. http://youtu.be/JgiQfpzGaaI
심사위원 윤종신이 너무 얄밉게도 "너는 훌륭한 프로듀서가 되겠다"고 꼭 짚어 얘기한 것처럼, 빼어난 가수보다는 좋은 프로듀서가 될 자질이 더 보이는 청년이지만,
사람들 몇 모아놓고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노래 부르는 이 영상은, 노래도 이 청년의 몸짓도 마음에 아릿하게 남네.
아직 후회가 무엇인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게 무엇인지 많이 겪어 보지도 못했으면서, 그런 가사가 담긴 노래를 부르며 가슴이 시리던 그런 날들, 그러니까 서른이 되기도 전에 '서른 즈음에'를 부르며 곧 닥쳐올 좌절의 시간을 조금은 감미롭게 예감하던
나의 그 시간의 장면들이, 그때의 누군가들의 얼굴이 흐릿하게 스쳐가.
5.
하루종일 강의 준비하기 버거워 밍기적거리고, 보고서에 달아야할 답변 쓰기 싫어 이리 뺀질, 저리 뺀질 하니까, 말은 술술 잘도 나오는구나.
어쨌든
"인생은 나..."